어렸을 땐 고독과 슬픔에 대한 남모를 호기심이 있었다. 나이가 들며 불현듯 생각만
해도 가슴이 얼얼한 그런 기억들이 이따금씩 찾아왔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던 하루하루를 다시 무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 결국
다시 무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저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내가 앞으로 가고있다고 인지 할 뿐, 스쳐가는 바람 한점 느껴지지 않는 이 곳에서 그저 묵묵히 고통을 견디어 낸다.
인간은 나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고통은 필연적이다. 어째서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로 만드셨나요. 누군가 그랬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맞다. 따라서 즐겁게 살기 위해,
고통을 줄이기 위해 또다른 고통을 견디며 산다. 고통 끝에 잠시 행복이 찾아왔지만, 그 행복은 더 큰 고통을 남기고 떠나간다. 행복이 떠난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너른 광야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해보이는 듯 하다. 바로 여기서 실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우린 누구이며 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가. 목적론에 입각한 이러한 생각은 결론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어리석고 나약하기 때문에 지혜롭고 강인한 것, 바로 목적과 타당성에 손쉽게 이끌린다. 또 그것에 유혹당한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인생의 결론에 다다른다. 수조의 인간들은
무상하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것을 잘 아는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은 다시 글을 쓴다. 현실의 고통과 그것의 타당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 결국 글은 아무것도 이뤄 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한 줄로 주욱
늘여 쓴 글은 행복이 떠나간 너른 광야를 벗어나려는 어리석은 자의 발자국과 같다. 결국 고통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어렸을 적 느끼지 못했던 실존의 고민은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실마리 삼아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깊어지는 내면에는 썩은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냄새가 역겨웠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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