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재림 # 1

인생의 가장 큰 수수깨끼는 자신이 가진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불현듯 찾아온다.

기적은 마치 유성처럼 부지불식간에 우리 옆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비켜지나갈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짧고 허망할 뿐이다.


"두.. 두줄. 어째서..?"

지원은 두 눈을 의심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며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

꽃다운 나이 스무살, 연애경험도 없는 지원에게 동정임신이란 형언할 수 없는 끔직한 기적이었다.


"그래. 예수가 어떤 존재였을지 한번 상상해보세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흰 머리의 교수는 교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졸고있는 학생들 앞에서 혼잣말 처럼 중얼거리는 듯 강의를 이어나갔다.

"예수라는 한 사람은 말이죠, 사실은 그렇게 처음부터 밝은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싱글맘의 품에서 자라며 온갖 굳은일을 하며 자라났죠. 어찌보면 약간의 애정결핍과 세상에 대한 분노 또한 마음속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고산대 신학대학 교수 곽철호는 그렇게 혼잣말 같은 강의를 마치고 너저분한 랩실로 돌아왔다.  랩실에는 젊어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추레한 이미지의 대학원생 경표가 맨 바닥에 늘어지듯 누워있었다.

"얌마 경표야! 그렇게 맨바닥에 누워있지 말라고 해도!"

"어엇..! 교수님 일찍오셨네요"

경표는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켰지만 아직 엉덩이는 바닥에 대고 다시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 지난번에 말씀하신 자료들은 일단 몇개 찾아서 웹하드에 저장해두었는데요. 이게 뭐 워낙 드문 케이스다 보니 사실 자료 찾기가 쉽지 않네요."

교수는 혀를 끌끌 차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 뭐. 그렇게 드문 일이니 사람들이 기적 기적 하는거지.. 자주 일어났으면 기적이라고 하겠어? 일단 지난번 자료도 한번씩 다시 스크랩 해서 정리좀 하자."

교수는 무심히 웹하드를 뒤져보며 파일을 하나씩 열어본다.

경표는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나며 혼잣말을 했다.

"에휴..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2024년 10월 6일 서울 밤10시.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보이는 학생이 검은 후드를 눌러쓴 채 다 쓰러져가는 빌라의 공동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후우 .. 하아"

각종 더러운 쓰레기들. 비닐과 비닐 안에 쌓여있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다 튿어진 장갑으로 하나씩 가져온 쓰레기통에 담는다. 

"에이 씨발! 정말 못해먹겠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긴 어려울 찰진 발성의 육두문자가 허공을 갈랐다.

삑-삑-삑

공동 현관 문을 열며 누군가 걸쭉하게 취해서 들어온다. 남자가 비틀비틀 대며 학생에게 불안하게 다가갔다.

"이새끼 너 .. 누구야?"

취한 남자는 초면에 반말을 시전하며 아이의 후드티를 뒤집어 깠다. 

어린아이의 얼굴 이라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세상의 풍파를 다 맞은 듯한 표정과 눈 밑에 자그마한 상처. 액면가는 중학생은 되어보이지만 영양 부족 탓인지 골격과 키는 아직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는듯한 체구. 

16살 진호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후드를 뒤집어 썼다.

"아니.. 저 그냥 청소하러.."

"이새끼가 말 똑바로 안해?"

착!

다짜고자 진호의 뺨을 때리는 취한남성

털썩

진호는 성인 남성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후.. 씨발"

주저앉은 채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진호.

진호는 다시 일어서며 작은 주머니칼을 꺼내 남자앞에 들이밀었다.

"이 씨발새끼야. 내가 쓰레기 치우러 왔지 뺨맞으려고 온줄알아?"

남자는 슬슬 뒷걸음질 치더니 계단위로 휙 올라가버렸다.

"하아.. 저 개같은"

한참을 그렇게 덩그러니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칼을 쥔채 서 있었다. 옆은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진호는 분노를 꾸역꾸역 누르며 하던일을 마저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