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일 금요일

어느 이별

이별은 생각보다 견디기 쉽지 않았다.

저 만치 멀어져 가는 듯 싶다가도 어느새 다시 눈앞에 들이닥쳐 내 마음을 긁고 간다. 가끔 음악을 듣다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면 다시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 너의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생각나버린다. 좋았던 감정과 슬픈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달콤 씁쓸한 색으로 변해간다.

일부로 기억을 닳게 하려 평소보다 더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 때문에 벌써 오래된 추억과도 같이 느껴지지만, 감정은 내 의도만큼 흐려지지 않는다. 이런 괴리감이 더욱더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어낸다.

많이도 울었다. 살면서 이렇게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싶었는데, 너를 만나며 단숨에 모두 쏟아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많은 게 무뎌지고 더렵혀질 것 이라 생각했는데, 순수한 부위는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어 너를 통해 발견되었다.

기억과 감정들, 밤새도록 나눴던 그 수많은, 기억도 다 나지 않을 대화들이 불현듯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의도치 않게 슬픔이 목구멍으로 차오르면 그 순간을 억눌러 참아내기가 쉽지 않다.

살면서 이별은 처음도 아니고 적지도 않았지만, 이 이별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

서너달이 지났다. 하루의 많은 시간들이 그나마 너를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두고 흘러간다. 감정과 기억의 갑작스런 습격은 그 빈도가 덜해졌다기 보다는 고통 자체가 익숙해졌다. 견디는 자의 하루는 길고 길다.

고독함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사실 그 고독함이 오히려 익숙해서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찾아온 너는 내 내면의 고독을 모두 삼켜 내 곁에 있다가, 다시 더 큰 고독을 뱉어내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 고독은 입으로 신음소리가 삐져나올 정도로 예전의 고독과는 질이 달랐다.

...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녀의 집앞 카페에서 기다렸다. 급격히 경사진 그녀가 사는 언덕위 동네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호젓한 풍경을 이루었다. 그녀는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옆으로 다가왔다. 여느때와 다름없었지만 그날따라 더 생기있어보였다. 마치 우리는 그림처럼, 언덕위의 시원한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서로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내가 그녀를 기다리며 하고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준다. 관심은 없지만 서로 오가는 대화와 분위기를 즐겼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들을 기대한다.

정막이 감도는 어두운 방. 그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를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익숙하고 편안했지만 왠지 이상했다. 한번도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오랬동안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나는 지금껏 이 세상에 홀로였다는 것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격체를 나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였고, 세상에 드디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녀의 크고 새까만 눈동자는 나에게 은하수가되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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