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0일 일요일
자유의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잘 살고 있는건지, 나는 과연 괜찮은 건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가만히 있으면 괜스레 괴로워서 일부러 더 쉴틈없이 주변을 만든다. 매 순간 욕망에 충실하게 그렇게 허망한 시간을 견디어 낸다. 자아가 생기고부터 알 수 없는 삶의 이유라는 것 때문에 결국 다시 또 밑바닥까지 내려앉는다.
가끔 삶의 이유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성공 혹은 사랑. 조금 더 지나면 아이와 건강을 걱정하겠지. 수 만년 전 부터 우리의 DNA에 적혀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왔다. 단 하루도 그 룰에 벗어난 적 없이 여태 살아왔다. 내게 대체 무엇이 결핍되었길래 이런 삶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걸까. 몸은 그저 생물적 안위를 위해 끊도없이 움직이는데 마음은 그것에 대한 벗어남을 갈망한다. 이런 모순 또한 인간종이 가지는 특징인가?
주변인들은 그런 의문을 많이들 품지 않아 보인다. 그저 생물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다들 목적이 아주 명확해 보인다. 그들에게 의문을 품는건 사치이고 쓸데없는 일이다. 그들의 의문은 결국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사색형 인간임을 처음 깨달은 것은 중학교때이다. 전교 성격검사때 밝혀졌는데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성격 유형인지 선생님은 이런 유형을 처음 봤다고 한다. 유형의 이름과 걸맞게 생각을 참 많이 하는 편이다. 아주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의 가설도 혼자 세우는 편이다. 그 중 하나는 자유의지에 관한 가설인데, 자유의지는 말 그대로 어떤 타율에 의하지 않은 스스로 발현되는 의지이다. 근데 이 타율이라는 게 참 애매한데, 학계에서는 이것을 앞서말한 생물학적 안위로 본다. 무슨 말이나 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 이성관계, 안전, 권력 등의 모든 욕망은 결국 타율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과연 내가 선택한 건 뭘까.
뇌의 시작은 파충류의 뇌로부터 시작한다. 파충류의 뇌를 보면 아주 얇고 작은데, 그 역학은 특별한 것 없이 생명 유지이다. 숨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체온 유지 등 생명을 유지하는데에 아주 기본적인 역할만을 담당한다. 생물은 수십만년간 진화하면서 그 뇌에 기능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진화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기능은 이전 기능을 Base로 그저 추가된다. 그 예로는 눈의 기능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물속에서 진화하여 육지로 올라왔지만 그 때문에 정말 많은 비효율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뇌도 그런 식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수많은 모순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인간 종이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대뇌가 급격하게 성장했다. 대뇌는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종교, 회사, 화폐와 같이 거짓인 것을 그토록 잘 믿을 수 있는 이유중 하나이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우리는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지며 결국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내 가설인데, 문제는 결국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피엔스 시대로 접어들며 뇌를 전부 재설계했다면 현재의 자가당착적인 인간의 모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뇌의 Base는 파충류의 뇌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추상적인 생각들의 Base는 결국 생존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게 문제가 되는가? 앞서 말했듯이 모순이 생긴다. 대뇌의 기능은 생존이라는 Base를 벗어나려 함으로써 오히려 생존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추상적 사고의 뿌리는 생존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뿌리깊은 이유 중 하나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이다. 몇 번이나 생각을 해봐도 결론은 같았다. 물론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주 유약하고 어리석은 아이의 욕망이다. 이건 나의 예시이지만 자신을 돌아보라. 당신이 하는 모든 말과 생각들의 좀 더 근원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이 시기질투하는 누군가를 언짢게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토록 어떤 신념을 따르는 이유는? 결국 우리는 우리 안에 작은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선 대조군이 필요하다. 내 가설은 뇌의 생물적 한계 때문에 오는 필연적인 자유의지의 부재이다. 모든 원인은 대뇌 피질을 제외한 모든 뇌의 구성원들이다. 대조군은 결국 대뇌의 피질만이 정상 동작하는 인간일 것이다. 그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될까? 그의 말과 행동, 그가 추구하는 것들은 정말 인간적 욕망이 배제된 추상적 사고들일까? 그는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을 극복한 현자가 될까? 혹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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